못다 핀 꽃 -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미술 수업
이경신 (지은이)
arrow_right
1/6
help_outline책 정보
한줄요약: 할머니들은 작은 붓 하나로 과거를 들여다보고 상처 난 마음을 보듬으며 마침내 자신의 삶을 마주할 수 있었다. 평생 마음속 깊은 상처와 한을 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신 강덕경 할머니와 김순덕 할머니...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림을 그리며 표현하시고자 하셨던 이야기들... 오늘 뉴스에서 28년동안 한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수요일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봤다. 화면에는 나이어린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내가 너무 무관심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반성도 들고 뉴스를 접할때만 분노하지 말고 좀더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P. 138 할머니는 생애 처음으로 입에 풀칠하기 위한 노동이 아닌, 오로지 자신을 위해 하는 일로 흥분되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P. 148 그림은 정갈하다. 언뜻 보면 분홍 꽃이 만개한 화사한 벚나무 그림 같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수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속 소녀는 언덕에 누워 울고 있다. 군인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얼굴을 가리며 울고 있다는 것은 이 소녀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P. 156 그림은 소녀 덕경의 경험만큼 잔인해 보이지 않는다. 수치심에 절망해 우는 소녀가 있고, 소녀를 잔인하게 유린한 폭력과 광기가 있고, 이미 무참히 생명을 빼앗긴 해골들이 즐비한데도 그림은 우아하다. 비극을 품은 우아함이 흐른다. 강 할머니 그림의 예술성은 자신이 경험한 비극을 초현실적면서도 아름답게 나타내는 역설, 그 지점에 있는 듯하다. 그동안 연마한 사실적 재현 위에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슬픈 서사가 더해져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첫 번째 그림은 강 할머니 삶의 새로운 가능성이자 희망이 되었다. 강 할머니가 마음속 깊은 우물에서 자신의 고통을 길어 올려 그림으로 그려냈다는 것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아를 되찾아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을 뜻한다. 그림 <빼앗긴 순정>은 그 첫 발자국이 되었다. P.202 <못다 핀 꽃>에서도 김 할머니는 피지 못한 목련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도, 직접적 표현을 삼가고 거센 폭풍 같은 운명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순박한 꽃봉오리처럼 여리고 슬픈 아름다운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점이 할머니 그림의 강점이 되어, 보는 이의 마음에 호소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더불어 '못다 핀 꽃'이라는 제목에 깃든 애잔한 정서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P. 239 김 할머니의 <끌려감>은 공장에 돈 벌러 가는 줄로만 알았던 순진한 산골 소녀 순덕의 놀란 마음을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소녀를 끌고 가는 일본군의 구체적 형상을 생략하고 우악스러운 손만 그린 것은 더 자세히 그리기 어려워서인 것으로 짐작되지만, 되레 그 선택이 매우 훌륭한 결과를 낳았다. 두렵고 악랄하고 잔인한 존재는 보이지 않고 가려져 있을 때 더욱 공포스럽다. 50여 년이 지난 그때도 피해자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악몽을 꾸며 괴물에 붙들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느릿 느릿 서투른 선으로 조심스럽게 그린 고국 강산에 김 할머니의 아픈 상처가 더해져 슬프고도 아름다운 동화가 되었다. P. 256 나는 강 할머니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갇혀 있던 분노를 쏟아내고 새로운 삶을 선택했음을 느꼈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굳어 있던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을 때 그렇게 확신했다. 그동안 고통과 괴로움으로 흘러보낸 세월이 억울해서라도 앞으로 남은 생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이미 뼈져리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스스로 분노를 내려놓고 고통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짐작했다. P. 300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전쟁과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철저히 무너뜨리는지, 얼마나 큰 절망을 안겨주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한일 간의 역사 문제를 넘어 여성 인권의 차원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던진다. 할머니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연대함으로써 만연한 일상의 성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림을 그리며 활짝 웃던 할머니들의 소박한 미소를 기억한다.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가꾸려 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