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은 작년에 샀다가 이번 겨울에서야 꺼내들어 읽었다. 이렇게 사두고 펼쳐보지 못한 책들이 많다. 언젠가는 읽을 수 있기를.
이 책은 물리학자가 썼다. 읽다보면 딱 물리학자의 글쓰기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에 대해서 설명을 많이 한다. 그의 글쓰기도 이 최소단위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장이 간결한 편이다.
하지만, 물리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여전히 잘 이해가 안되는 내용도 많았다. 나의 과학지식이래봐야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배운 것이 전부인지라, 그 이상의 어려운 내용이 등장할 때는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자세한 설명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과학도서는 아니었기에 한계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우선,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좀 더 '정말 그렇지 않을까?'하는 믿음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나는 물리학을 배우면 인간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막연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물리학에서 설명하는 물질세계의 원리와 인간행도의 원리에 뭔가 유사점이 있을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에 기반한 생각은 아니었고, 순전히 나의 직관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생각이 아주 틀린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좀 더 물리학을 공부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읽으면서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을 메모해둔다.
직선적이지 않은: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직선형태를 띠는 것이 거의 없다. 나뭇가지의 모양, 파도의 형태, 돌의 모습 등.. 직선적이지 않다. 인간행동도 그렇다. 우선 인간의 몸만 보아도 어느 한 군데 직선이 아니다. 키가 자라는 형태를 보아도 매년 같은 크기만큼 자라지 않는다. 어릴때 급격히 많이 자라다가 다시 청소년기에 급격히 많이 자라고 성인이 되면 그 키가 대체로 유지된다. 나이가 들면 다시 키는 줄어든다. 학업성취도, 사람들 간의 관계, 등 어떤 행동지표도 직선의 형태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여전히 인간행동을 '직선'이라 가정하고 진행된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회귀분석법이 그 예이다. 회귀분석의 가장 중요한 가정 중 하나는 두 가지 변인 간의 관계가 직선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가정이 틀렸기 때문에 이런 분석방법을 사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사회과학은 아직까지 직선적이지 않은 행동패턴을 분석하는 방법을 많이 모르고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저자는 어떤 물체가 정지해있는 것 같아도 원자들의 떨림(즉, 운동)이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발달에서도 비슷한 철학적 논의가 있다. 예를 들어, '변화'가 있다고 할 때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변화가 없다고 봐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겉으로 볼 때는 늘 웃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감정(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는가?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단서를 주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인간의 아주 근본적인 두려움 중 하나인 죽음. 저자는 물리학적 입장에서는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원자들이 흩어져 다른 형태로 바뀌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에 대해 달리 생각해보게 된다. '나'라는 형태만 없어질 뿐이지, 그 물질적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 또한, 영적인 '나'도 당연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나로서는 죽음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상태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전에 어떤 의학박사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죽음학 전도사’ 정현채
www.hani.co.kr
“우리가 죽어서 육신을 벗어나면 진동하는 에너지체로 존재하는데 그 주파수에 따라 비슷한 에너지체끼리 모인다.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체는 그것끼리, 증오와 질투로 살아온 에너지체는 또 그것끼리…. 절대적 심판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에너지체 스스로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 셈이다. 그러나 그 구분은 보상과 징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고 새로운 영적 진화를 도모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4351.html?fbclid=IwAR2eWlDAHEFU6Uthad-OorwFmmtKkU5MhJHh3vIxMpHzk47wITQWcwSP78Y#csidxed889938dfdab08b8afcfaf793e4674
과학적으로 그럴듯해보이는 설명이었어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이런 체험을 한다. 보통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끼리 친해지게 되지 않는가. 선한 사람들 주위에는 악한 사람들이 다가갔다가도 밀려나온다. 악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있다. 서로 잘 통하니까. 그것도 에너지체 혹은 원자론으로 설명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 몸의 일부인 원자들도, 내가 평생 어찌 살아왔느냐에 따라 내가 죽을 때 어떤 에너지를 내느냐가 달라지겠지? 즐겁게 착하게 살아야겠다.
시간과 공간: 이에 대해서도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있었는데 역시나 이해가 어려운 부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막연하게나마, 인간이 세는 시간의 단위가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나이. 우리는 나이를 이야기할 때 연대기적 나이를 주로 이용한다. 태어난지 몇 년 되었냐 하는 것. 우리나라는 특히 이 나이로 서열이 정해지고 지위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나이라는 것은 다소 인위적인 것 같다. 인간편의로 만들어낸 시간단위를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한 것이니까. 하지만, 영혼끼리 통하고 에너지체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면 그것이 친구인 것 아닌가. 10살과 80살이 친구를 못하리라는 법이 없거늘.. 또한, 나 스스로도 내가 40이든 50이든 나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이 나이에 어떻게 그걸 하겠어' 또는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생각은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