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라는 뼈
김소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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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귀 ​ 김소연 ​ 탁상시계를 던져본 적이 있다 손아귀에 적당했고 소중할 것도 없었던 것을 ​ 방바닥에 내던져 부서뜨려본 적이 있다 ​ 부서지는 것은 부서지면서 소리를 냈다 부서뜨리는 내 귀에 들려주겠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 ​ 고백이 적힌 편지를 맹세가 적힌 종이를 ​ 두 손으로 맞잡고 천천히 찢어본 적이 있다 ​ 이렇게 가벼운 것이잖아 하며 손목의 각도를 천천히 틀면서 종이를 찢은 적이 있다 ​ 찢어지는 것도 찢어지면서 소리를 냈다 찢고 있는 내 귀에 기어이 각인되겠다는 듯 날카롭게 높은 소리를 냈다 ​ 무너지는 것들도 무너지는 소리를 시끄럽게 낸다 ​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을 항변하는 함성처럼 웅장하게 큰 소리를 냈다 ​ 이 소리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 이 소리들을 내가 기억하는 것이 나의 무고를 증명한다는 듯 기억을 한다 하지만 ​ 망가지는 것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조용히 오래오래 망가져간다 ​ 다 망가지고 나서야 누군가에게 발견이 되는 것이다 ​ 기억에만 귀를 기울이며 지나간 소리들을 명심하느라 조용히 오래오래 내 귀는 멀어버렸다 ​ 한밤중에 눈을 뜨면 내가 키우는 식물이 자객처럼 칼을 뽑아 나를 겨누고 있다 ​ 칼날 아래 목을 드리우고 매일매일 무화과처럼 나를 말린다 ​ 시원하게 두 동강이 나서 벌레가 바글대는 내부를 활짝 전개할 날을 손꼽는다 ​ 오늘 아침 나의 식물은 기어이 화분을 두 동강 냈다 ​ 징그럽고 억척스럽고 비대해진 뿌리들이 그 안에 갇혀 있었다 ——— 첫 페이지. 처음 읽었던 김소연의 시. 단어들이 진하다. 색감이 진하면 어둡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김소연의 시는 단어들의 색감이 진하고 부정적임에도 어둡다기 보단 쨍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