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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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20. 23 도스토옙스키<<죽음의 집의 기록>>(2010)에서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적응과 망각은 놀라울 정도로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암울한 현실을 애써 잊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픈 본능은 집요하다. 상대가 아무리 숱한 악행을 저질러도 그 사람이 나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 쉽게 포기하고 용서한다. 평온한 삶을 지속하고 싶은 관성은 이성이라는 브레이크를 마모시키고 무력화한다. 상처를 얼기설기 봉합하고 활시위처럼 재빨리 일상으로 되돌아오지만, 그 복귀의 탄성에 날아간 화살은 각자의 가슴 깊숙이 박히기 마련이다. 27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큰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H.G.웰스)이다. ... 가정 내 폭력은, 인간의 마지막 안식처를 파괴하고, 가족 구성원글을 더 이상 의지할 곳 없는 극한의 상황으로 내몬다는 점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 가정이 사적 영역이므로 공권력 개입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명제는, 그 가정이 가정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폭력으로 누군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 곳에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