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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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p. 아이의 작은 손 병원, 장염인 듯싶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진료 차례가 된 엄마가 잠시 나에게 아이를 맡겨도 되겠냐고 묻는다. 나는 충분히 괜찮지만 아이가 괜찮을까. 엄마는 서둘러 의사를 만나러 들어가고 한 공간에 아이와 나 만 남았다. 아이는 긴장하고 있다. 낮선 사람과 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좀 가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도 지내봐야 하는 거다. 대기실에는 작은 소리로 티브이가 켜져 있었다. 아이는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가 티브이 쪽으로 걸어가더니 멈춰 섰다. 뭘 보았는지 티브이에 얼굴을 고정한 채 손만 들어 나를 불렀다. 수십 마리의 고래 떼가 바다 위를 헤엄치고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아이는 눈이 점점 커지더니, 나를 부르는 손을 더 크게 움직였다. 손짓이 간절했다. 나도 아이 옆에 나란히 서서 아이가 보고 있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작은 손으로, 내 두꺼운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