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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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요약: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사회역학이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는다. p. 165 세월호 참사를 우회하고는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할 안전한 대한민국은 불가능합니다. 이 문제는 진보와 보수가 대립할 영역이 아닙니다. 어떤 사회를 꿈꾸든, 그 사회 구성원이 살아남아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한국사회는 비극으로만 기억되는 기존 재난들과는 다른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이 참사의 연쇄 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176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p. 219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p.234 그런데 신기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 번 피해자의 경험을 가진 파란 눈의 아이들은 '우월한'집단이 되어서도 '열등한' 갈색 눈의 아이들에게 훨씬 더 너그러웠습니다. 차별받는 소수자가 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 더욱 조심할 줄 알았던 것이다. 제인 엘리엇은 차별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주는 교훈에 주목하고 이 실험을 노동자, 교사 등 다양한 집단에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행합니다.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책 한 권의 책을 읽고 판단하기엔 성급할지 모르지만 존경합니다. 김승섭 교수님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된 이유가 몹시도 궁금했다. -------------------------------------- 누구보다도 어머니 박숙희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돌이켜보면 인간이 함께 건강하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들은 결국 당신이 보여준 삶의 자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넉넉지 않은 집에서 의대를 졸업한 큰아들이 걸어가는 길을 묵묵히 지켜봐주셨던 그 마음이 제게는 가장 큰 응원이었습니다. ---------------------------------------- 세상을 좀 더 인간다운 곳으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 비슷한 것을 느끼기 이전에, 주변 사람들 누구도 하려 하지 않고 또 심지어 대부분의 동기들이 '누군가는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이 일을 왜 내가 나서서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자꾸 되물어야 했던 시간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세상을 냉정하고 엄밀하게 분석하기보다는, 내가 왜 그런 활동들을 하려 하고 그게 내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았던 것 같아요. 사회가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꿈이 없다면, 남은 길은 자신의 삶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진보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고 그럴 수 있게 준비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산업재해를 당한 분들이 모인 사무실에서 한 달 동안 자원상근을 한 적이 있는데요. 어느 날 저녁에, 제가 기타를 치면서 함께 여러 노래를 부르다가 기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고 주변 사람을 둘러봤을 때, 손가락 열 개가 온전히 있는 사람이 저 하나뿐이었어요. 밤새 민주노총 신문발송 작업을 하고서 모두가 피곤에 곯아떨어져 있을 때 산업재해를 당한 후 유일한 직업이 되어 버린 우유배달을 하러 가야 한다고 아무 말 없이 오토바이를 끌고 새벽에 나가던 그 뒷모습에 느꼈던 삶의 끈질긴 생명력 같은 거요. 의과대학 학생 시절 점심시간에 재활병원에 있는 사지마비에 걸린 아이들의 점심 식사를 먹여주는 활동을 했었는데................ 그 아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 아이들보다 하루만 더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감당해내는 부모들을 보면서 느꼈던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경험들이 저를 살아 있게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그것들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러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훨씬 커요. 어찌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지요.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기심을 채우는 일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결국에는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보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