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단두대조차도...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정신병인지 사랑인지 분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머뭇거리면서 자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부터 모든 의미를 박탈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그는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einmal ist keinmal. 한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그녀가 아니라 동정심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치면서 깊어진,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 타인을 대신해 느끼는 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파르메니데스와는 달리 베토벤은 무거움을 뭔가 긍정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필연적인 것만이 진중한 것이고, 묵직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이런 신념에 어느 정도 동조한다. 우리 생각에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거라고 믿는다.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ea muss sein!이라기 보다는...가능성의 왕국에는 토마시와 이루어진 사랑 외에도 실현되지 않는 다른 남자와의 무수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토마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공격적이고 장중하고 엄격한 "es muss sein!"에 짜증이 났고, 그의 가슴속에는 파르메니데스의 정신에 따라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깊은 욕망이 있었다.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그는 이보다 더 처절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감당할 힘이 이제 그녀에게 없다고 생각했다. 테레자의 단 하나의 꿈이 불러일으킨 슬픔은 견딜 수 없었다. 죽음이란 이런 것이다. 자고있는 테레자가 끔찍한 가위에 눌렸는데, 그는 그녀를 깨울 수 없는 것이다.
꿈속의 젊은 여자는 그의 사랑의 'es muss sein'이었다. 그는 플라톤의 향연의 유명한 신화를 떠올렸다. 옛날에 인간은 양성을 동시에 지녔고, 신이 이를 반쪽으로 분리해서 그때부터 서로 반쪽을 찾으려고 헤맸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욕망이다.
그렇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들 각자에겐 과거에 한 몸을 이루었던 반려자가 이 세상 어디엔가 있다고. 토마시의 반쪽은 그가 꿈에서 보았던 그 젊은 여자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다른 반쪽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대신 테레자 같은 여자를 바구니에 넣어 그에게 흘려보낼 것이다. 그런데 훗날 그에게 숙명적인 여자, 자신의 또 다른 반쪽을 진짜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누구에게 호감을 주어야 할 것인가? 바구니 속에서 발견한 여자인가? 아니면 플라톤 신화의 여자인가?
그는 꿈속 여자와 함께 이데아 세계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그들 별장의 열린 창문 아래로 테레자가 지나간다. 그녀는 혼자이고 인도에 우뚝 서서 멀리서 그에게 한없이 슬픈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그는 그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가슴속에서 테레자의 고통을 느꼈다. 그는 다시 한 번 동정의 포로가 되어 테레자의 영혼 속으로 함몰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언제라도 꿈속 젊은 여자와 함께 사는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떠나 테레자 그로테스크한 여섯 우연에서 태어난 그 여자와 함께 떠나기 위해 자기 사랑의 'es muss sein'을 배신할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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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자와 토마시는 무거움의 분위기 속에서 죽었다. 사비나는 가벼움의 분위기 속에서 죽고 싶었다. 그 가벼움은 공기보다도 가벼울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른다면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으로 변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