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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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_outline책 정보
9가지 작가의 삶에서 나온 여행과 관련된 에세이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와 왜 나는 여행을 떠나는가, 앞으로 여행에 임할 때 내 마음가짐,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 등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김영하 작가의 삶에서부터 그의 생각과 가치관들이 모두 집약된 느낌이라 더욱 매력적이었다.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한다. 일상적인 공간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 집 주변 카페에 가는 것부터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까지 모두 좋아한다. 직장에서 2년 동안 다른 나라에 파견을 간 적이 있었다. 평소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에 흔쾌히 외국 생활을 받아 들였다. 그곳에서는 출근 시간부터 여행처럼 설렜다.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도 즐거웠다. 퇴근길에 볼 수 있는 풍경과 사람들까지 낯설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순간 그곳도 익숙해져서 한국에 있는 본가가 오히려 낯설 게 느껴졌고 휴가 때 한국에 잠시 왔을 때도 여행으로 다가왔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한국에 정착하게 된 지금도 난 여행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작가의 생각을 빌려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여행을 통해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는 것이 내가 여행을 가는 가장 큰 이유인 듯 하다. 설사 나의 계획대로 여행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밖에 나가면 돈도 들고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 과정이 있어야 평상시의 나를 유지한 나로서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 세 번째로 사람이다. 함께 여행을 하게 된 사람과의 추억이 나는 좋다. 그리고 여행지에 만난 사람들로부터의 설렘과 따듯함과 동시에 경계심이 그립다. 그래서 다음 여행을 또 계획하게 된다. 이 책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또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다음은 각 챕터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들이다. 추방과 멀미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으로부터 달아나기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안부를 물으며 주기적으로 만나거나, 철저히 혼자가 되거나,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떠나거나, 진탕 술을 마셔야 된다는 그런 것들.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그래야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오직 현재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인류는 걸었다. 끝도 없이 걷거나 뛰었고, 그게 다른 포유류와 다른 인류의 강점이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우리는 여행 에세이나 여행 프로그램 등을 보고 어떤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그곳에 다녀온다. 그러나 일인칭으로 수행한 이 '진짜' 여행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그곳을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여행서나 tv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읽거나 보게 된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방랑을 멈추고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는 어떤 곳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할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나는 그곳에서 받아들여질까? 요술 장화를 신고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슐레밀,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내 운명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삶은 과연 온당할까?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반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바디의 여행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여행으로 돌아가다 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휴대전화 전원은 꺼졌다. 한동안은 누군가가 불쑥 전화를 걸어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 모든 승객은 안전벨트를 맨 채 착석해있다. 어지러운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멀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작가의 말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