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소녀 혹은 키스
최상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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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나듯,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아이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을 나는 후회한다. 꼭 수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평생 수영하는 법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나는 말해 줬어야 했다. p.226,거진 열흘만에 다시 책을 들었다. 뭐... 하루에 단편 하나 읽기로 마음먹었지만 유독 이번 이야기는 계속 읽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이야기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문제로. 그러면서 꾸준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기도 많이 했는데, 어쨌거나 지금은 다시 읽기 시작했으니까 된 거 아닌가? 장하다. 나 자신이여. 오랜만에 읽은 단편 중에서 이번 건 특히 나를 한없이 눈물짓게 만들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에 자책할 주인공과 소라 귀 여자애가 안쓰러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물고기가 되고자 한 꿈을 단 한 번밖에 실현하지 못한 여자애의 팔 없는 동생이 자꾸 아른거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의 수영장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신기루 같다. 주인공은 새벽녘 수영장에 놀러오는 아이들을 보고 '요정'이라 칭했을 만큼 묘한 감정을 느꼈다. 여자애의 소라귀도, 수영장을 걸어다니는 동생의 팔 없는 몸도 이질적이지 않은 신비로움이었다. 팔 없는 몸으로 어떻게 수영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매정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러나 우린 기적의 실현을 바라기 전에 현실의 다독임을 먼저 해주어야 했다. 세상엔 길다란 두 팔을 가지고도 평생 수영하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기적의 단어는 사실 조롱 섞인 회의일지도 모르겠다고. 꼭 다른 이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수영장을 걸어다닐 용기를 지닌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는 한마디를 해주었어야만 했다. 주인공은 무엇보다 기뻐하는 동생을 바라보는 여자애의 미소 한 번이 고팠을 뿐이었으므로 이번 이야기가 내게 길게 얹혔다. 순수함이 불러오는 비극은 강도가 더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