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에 희망이 있다.” (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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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p.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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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geography 시간에 world population 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Hans Rosling이 강연하는 영상을 봤는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제껏 알던 세상과는 너무 달랐다. 그런데 문득, 오래전에 사두었던 책의 제목,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Factfulness를 사서 읽기 전에 우선 이 책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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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식량 특별 조사관이 그의 경험과 조사를 토대로 ‘기아’ 문제를 다루는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단순히 기아 문제만이 아니라 기아가 등장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 즉, 정치적 혹은 사회적 배경도 자세히 소개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시한 몇몇 정책들과 결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행해진, 뜬구름 잡는 식의 기아 대처법에 대해 이야기하며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트렌드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신봉되어지는 신자유주의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돌아가는 세계의 사회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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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과 후, 기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읽기 전: 기아 문제는 어쩔 수 없다.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다. 기아들이 불쌍하기는 하지만 그들을 위해 세계의 구조를 바꾸기는 무리가 있다.
읽은 후: 기아 문제는 타파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의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살바도르의 아옌데나 부르키나파소의 개혁가 상카라와 같은 혁명가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부조리한 경제 논리 속에서 소수이 권력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따라서 기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기아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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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술술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래도 아들의 질문이나 의문 제기에 아빠가 대답하는 형식이라 읽기가 그렇게 무겁지 않고 쉬운 책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을 덮으니 뭔가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뻔한 스토리를 설명하고 있는 느낌. 분명 기아 문제라는 심각한 사회 이슈에 대해 읽었음에도 너무 뻔한 이야기다보니 ‘당연하지’ 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다가 생각보다 남는 게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장 지글러가 아니였다면 알 수 없는 많은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어 상당히 퀄리티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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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5초에 한 명의 어린 아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비바람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집이 있는 것,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수 있는 것, 공부할 수 있는 것.. 이렇듯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아니다. 그들은 편히 쉴 집이 없고 당장에 먹을 것조차 없다. 일분 일초를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고 굶주림과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껏 내가 소유한 이 모든 것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건 아닐까.. 너무 익숙해져 그 소중함을 못 깨달은 것은 아닐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나에게 내 삶을 다시 성찰해 보라고 따끔하게 꾸짖는 책인 것 같다. 네가 누리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왜 감사할 줄 모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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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가 될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자율성과 수입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든다. 남을 위한 의사가 되고 싶다.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도 남을 도와줄 수 있는 그릇을 갖춘 의사가 되고 싶다. UN에 들어가 아프리카의 빈민 국가에 자원봉사 가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생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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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국가를 그저 나와는 상관 없는, 전혀 다른 세상라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신자유주의가 이 세계의 유일한 정답이고 약육강식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