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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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_outline책 정보
“푸른빛이 감도는 세제가 흔들리는 물살에 몸을 섞는다. 세제가 완전히 녹아들기까지 순식간이다.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그냥 세탁 보조를 할 뿐이었던 로봇 하나가 골목의 삶 속에서 조금씩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초반에 읽을 때는 죽은 아들이 보낸 로봇이라길래 뭔가 아들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추리소설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을수록 홀로 살아가는 명정, 힘겹게 살아가는 시호의 삶에 동화되고 인간보다 더 따뜻한 위로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로봇 은결에 나도 감동을 받았다. 흔히 로봇관련 책이나 영화들은 편리하려고 만든 로봇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공포심을 다루었는데 이 책은 아니었다. 은결은 자신의 프로그램에 따라 패턴화된 행동에서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공감한 나머지 아버지와도 같은 명정이 죽자 자신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꼈으며, 로봇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려하기까지 한다. 이 부분에서 정말 눈물이 났다 ㅠㅠ 또 인간의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로봇의 시각으로 표현한 점도 인상깊었다. 작품에는 잘 사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세주, 시호, 명정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고통스런 삶이라도 이웃과 정을 나누고 결국에는 사랑으로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은결도 이런 골목의 처절한 삶 속에서 여러 감정을 느끼고 인간다워질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