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이 처음 예술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런 주장을 폈다.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백색 공포 때문이라고.
그림한점 걸려있지 않은 방이 두려워 사람들은 채우고 또 채운다.
- 그 순간에도 북극점은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을거야
- 북극점이 움직이는게 아니고 그들이 서 있는 얼음 덩어리가 부유하는 거지.
- 그게 그거지. 우리가 떠다니든 북극점이 움직이든 결국은 마찬가지 아니야? 그럴때 없어?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두리번 거릴때 말야. 여기가 어딜까 하면서.
- 인간들은 불멸에 대한 강박때문에 참된 아름다움을 박제하죠.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게 없을까 인생이란
자살을 돕는 자살보조사와 삶에 흥미를 잃은 그의 의뢰인들의 이야기다. 작가의 문체가 예술적이고 흥미롭기에 더 위험하다 느껴졌다. 죽음을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관문처럼 설명하고 삶을 지루한 것으로 말하는 듯하다.
나의 관점과는 맞지 않다. 그럼에도 여운이 남는 이유는 인생에 모든 흥미를 잃은 자들만이 말할 수 있는 관조적인 언어들이 문득 내 일상의 생각과 맞을때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백색의 무미건조한 삶이 두려워 온갖 색을 가득채워가는 나는 맞게 살고 있을까. 먼길을 돌아가 내 삶을 돌아볼때 나는 내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질까 지루하게 느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