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증거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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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에게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말로써 전해지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 정리해서 담지 못한 것, 우리가 글에서 읽어내지 못한 것, 글에 담고 싶진 않았으나 말하고 싶은 것, 곧 우리가 작가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작가의 인터뷰를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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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는 ‘참으로 부당하고 서러운 일’, ‘눈앞에 보이는 일들’을 ‘증거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여성 문제를 언급하게 된다고, 그것은 ‘우리 시대’의 모든 작가들에게 당연한 일이라고. 박완서 작가가 말하는 ‘우리 시대’는 2020년까지 이어졌고,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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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는 시대’ ‘양심’ ‘여성의 삶’ ‘감정적 자립’ ‘허위의 고발’ 등. 박완서 작가가 소설로 보여주고 싶은 문제의식, 지향하는 세계 혹은 사회, 개인으로서 지향하거나 지키고 싶은 것. 인터뷰어와의 관계나 인터뷰의 초점 등에 따라 박완서 작가의 면면이 색다르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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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날을 건너오는 소설」 인터뷰 파트를 읽으며 박완서 작가가 겪었을 폄하와 무시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인터뷰어들은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그들의 시선으로 작품을 재단하려 한다. 남성이라는 위치와 한계적인 평론의 언어에 갇혀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자신들의 인지에 맞춘다. 존재하는 삶과 갈등을 지우고, 매끄러운 이해로 세상을 그대로 두고 싶은 것이다. 유려한 듯 보이는 경직된 언어와 작품을 나무토막 자르듯 읽는 그들의 독해력에 질려버렸다. 그중 여성 작가를 일반화하려는 한마디는 정말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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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덕분에 박완서 작가를 바라보는 부정적인(나로서는 동의되지 않는) 시선을, 인기 있는 여성 작가에게 쏟아졌을 차별의 시선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박완서 작가의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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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웃는 모습에서 그녀가 지닌 소박함, 세상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인터뷰와 소설을 곱씹으면, 그 뒤에 내려앉은 그늘을 상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