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 맘 때 처갓집에서 이 책을 처음 발견했다. 낼 모레 마흔을 앞 둔 나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는 책 제목이었다. 흥미로운 '마흔에게'라는 책 제목. 나이가 들수록 인생을 더 현명하게 슬기롭게 가치있게 살고 싶다는 욕심도 커진다. 처갓집에서 쉬는 틈틈이 책을 읽었다. 분량이 많지 않고 중요한 내용을 여러 번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쉽고 빠르게 읽힌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서문으로 책은 시작한다. 서문 또는 머릿말은 정말 중요하다. 작가가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전체 내용을 요약한 것이 서문이라 해도 무방했다. 이 책을 읽을까 고민이신 분들은 서문을 정독하면 판단을 빨리 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작가는 나이 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첫 챕터를 시작한다. 노화가 퇴화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나이듦은 사계절과도 같이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이를 먹어서도 현명하게 살 수 있는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 사실 그 내용은 40대가 아니라 그 어떤 세대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삶의 가르침이자 교훈이다. 이 책을 통해 오래 기억하고 습관으로 남기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는 걸로 서평을 작성하고자 한다.
첫째로 부족한 내 모습도 받아들여야 한다. 지나고 보면 나는 겁이 참 많았다. 운 좋게 나를 찾아온 좋은 기회도 나 스스로 핑계를 만들어서 거절하고는 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못한다고 단정했던 이유는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나의 머리가 좋다고 하셨다. 공부를 안 해서 못 하는 거지 열심히 하기만 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 기대하셨다. 그래서인지 백프로 최선을 다했는데 부모님을 만족시킬 만한 결과가 안 나오면 어떡하냐는 불안감이 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스스로를 완전히 연소시킨 경험이 없다. 올해 직장에서 7년만에 새로운 보직을 맡게 되었다. 발표가 나고 며칠 동안 불안했다. 서툰 내 모습이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잘하게 되는 것의 첫걸음이다.
다음은 노력의 방향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며 살아왔다. 학교에서부터 상대평가로 그런 마인드를 단련해왔고 사회 역시 끊임없이 경쟁을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입시나 취업 같은 경쟁이 끝나면 우리는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는다. 하지만 인간은 죽을 때까지 진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 진화하느냐는 것이다. 누군가와 비교해 위냐, 아래냐는 기준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다. 또한 타자와의 비교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해마다 영어, 중국어 공부를 시도했다. 하지만 늘 중간에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언제나 능숙하게 의사소통하는 이상적인 자신을 그려놓고 그렇지 못한 스스로를 다그쳤던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조금이라도 실력이 향상되는 내 모습에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격려할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 천천히 성장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 하고 있다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 다행히 작가의 말처럼 40대를 앞둔 지금은 그것이 가능할 듯 하다.
작가는 인생을 춤에 비유했다. 춤출 때는 순간순간이 즐겁다. 도중에 멈추더라도 괜찮다. 어딘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의 한순간이 완전하며 완성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한 줄의 직선으로 파악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시작과 끝이 있으며 불가역적으로 종점으로 향하는 움직임으로 본다. 이런 관점에서 남들보다 빨리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고 생산직이며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남들이 그 나이대에 하는 것들을 해내지 못하면 비난을 받거나 스스로 움츠려들게 된다. 책에서는 생산성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생산성이란 단어를 볼 때마다 친한 선배가 자주 쓰는 말이 생각났다. "이 녀석~ 진짜 가치 있네." 또는 "너 진짜 가치 없다." 그 말을 들을 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가치를 생산성에서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가치를 생산성에서 찾는다면 늙음이란 최악이다. 치매에 걸린다거나 신체 어느 부위가 불편해진다면 나는 쓸모 없는 존재,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다고 한다. 늙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떤 상태든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공헌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무 일도 못하더라도 도움을 받음으로써 도와주는 사람이 공헌감을 느끼는 것에 공헌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도 난 부모님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한번씩 이 나이 먹고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다 해야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아들에게 아직 줄 수 있는게 남아 있어 즐거워하는 두 분을 위해 고민이 있으면 조언을 구하거나 반찬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드린다. 그리고 부모님이 예전과 같은 기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생산력의 측면에서 보지 않고 그저 내 옆에 계셔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여기며 대할 것이며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행복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다.
다음은 책에서 나온 어른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요건이란 말을 소개하겠다. 첫 번째 요건은 타자가 어떤 평가를 하느냐와 관계없이 자신이 했던 일이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목 매달고 자신에게 관심이 없거나 좋은 평가를 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아직 어른이 덜 된 사람들이다. 물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내가 해야하고 주어진 일이니깐 묵묵히 해내고 나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자고 다짐하지만 쉽지는 않다. 두 번째, 결정은 스스로해야 한다. 자신의 과제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사람은 상대의 결정 또한 존중할 수 있는 어른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 역시 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어른이다. 세 번째, 자기 중심성에서 탈피하기. 나는 타인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게 아니고, 타인도 나의 기대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야 한다. 특히나 부모나 자식에게 내가 바라는 상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그들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어른이란 타자에게 평가와 인정을 바라지 않고, 자신과 부모의 과제를 명확히 알며, 부모는 자신의 이상과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란 걸 아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자식 교육과 관련해서 기억할 만한 내용도 있었다. 최고의 자식 교육은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직업에 충실히 하며 보람을 느끼며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잘못된 것들은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취미 생활을 통해 인생을 긍정적으로 즐기며 사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아이 역시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분명히 내 자식이라도 때로는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설사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거나, 부모와 생각이 달라도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와 지금 여기를 사이좋게 지내는 것뿐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느냐 마느냐에 관계없이 부모는 부모대로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가족의 행복을 바란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럼 작가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은 성공과 같이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성공이 과정에 관한 거라면 행복은 존재에 관한 것이라 했다. 존재하는 것,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며, 성공과는 관계없이 이미 인간은 행복한 존재라는 것이다. 늘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었는데 이미 나라는 인간 자체가 행복한 존재라니. 뒷통수를 한 방 맞은 느낌이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나는 행복한 존재라는 가치를 진심으로 내재화하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일에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는 과제에 도전하는 용기.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만 살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지 못한다. 속으로만 꿈꾸지 말고 한 걸음부터 내딛어야 한다. 또 하나는 인간관계를 맺는 용기.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곧 어린이집에 가 첫 사회생활을 해야 할 내 아들도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로 인해 상처받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 또한 인간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다음은 타자 공헌이다. 살아가는 기쁨들 중 가장 큰 것은 나의 재능으로 타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타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든 말든 자신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타자와 공동체에 유익한 사람이 되려고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공동체 감각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다. '공동체 감각'이란 나를 주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주어로 생각하면 공동체에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를 주어로 생각하고 살 수 있으면 "우리를 위해 나는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수 있다. 배우자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것은 '나'가 주어인 대표적인 발상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이렇게 살아서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며 그것만으로 서로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가족들과의 관계는 분명히 달라진다.
내가 행복한 존재라는 가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주변을전염시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가지게 된다. 그럼 행복은 어떻게 드러날까? 먼저 행복은 정중함, 친절함과 같은 형태로 드러난다. 타인에게 기대하고 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그냥 주는 것이다. 행복의 마지막 증거는 관대함이다. 인간관계의 문제는 타자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거나 침범해오는 데서 일어난다. 관대하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자신의 과제를 스스로 해결할 힘이 있다고 신뢰하는 것이다. 힘에 호소해봤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대화를 지속하는 방법뿐이다.
경험한 것, 배운 것,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을, 뭔가의 형태로 직접 건네주고, 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싶다. 남은 인생의 후반전에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에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다.
끝으로 이 책에서 가장 명심하고 싶은 구절을 언급하며 서평을 마친다.
"신이시여, 바라건대 바꿀 수 없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침착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