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을 읽은 건지 정신이 없다.
"남자 작가"가 말하는 "남자 설명서"를 보고 눈물을 흘리다니. 나 역시 성별 앞에서 평등하지 못한 사람인 것이다.
남자를 이해하고 싶어 관련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전자도서관에서 빌려보게 되었다. 도대체 왜 남자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걸까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껏 읽었던 페미니즘 관련 책들보다도 내 마음이 울컥했다. 오늘 처음 만난 남자에게 "그래, 너 고생 많았다." 위로 받은 기분이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정확히 어떤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겪었으며 그것이 한 사람을 얼마나 병들게 하고 나아가 그가 속한 사회가 얼마나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지 뼛속까지 느꼈다. 나도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동안 말끝마다 억울하다고 말하는 남자들을 비판하고 꾸짖을 생각만 했지(당신보다 열악한 여자의 삶을 보라며) 그 사람 역시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왜.
남자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늘 억울하고 과잉보상을 요구하곤 한다. 과잉보상은 침착하고 이성적인 컨디션을 유지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힘들때 방어기제로 나오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한 세계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행위에 면죄부를 씌우는 것이다. 어쩔수 없었다고. 나만 합리화를 하는게 아니라 부모님, 친구들까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면 모두 그렇게 사는구나 하고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무리 속에서 홀로 고상함을 유지하기란 평범한 사람이 부처가 되는 것 만큼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회가, 군대가, 공동체가 짜기라도 한 듯 개인의 인권을 유린하며 권력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 상황에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죽으면 끝이다. 변화를 도모할 수도, 내 인권을 지킬 수도 없다. 폭력은 살인이든 자살이든 죽음을 부른다. 죽음 앞에서 고상한 것은 떳떳하게 생을 마감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내가 사는 동안 세상이 성숙해지길 원하지, 후세에게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을 지게 하고 싶지 않다.
누가 남자를 강하다고 말했나. 남자는 더없이 약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다. 여성들이 분노에 차 우리의 인권을 돌려달라 외치는 이때 남자도 힘들고 억울하다는 말을 슬쩍 내비치는 것은 총대를 매어 준 당신들이 있어 이제야 고충을 꺼낼 수 있다는 청신호다. 논점을 흐리자는 게 아니라 나도 지켜달라는 뜻이다. (실제로 여자가 여자들만 챙기면 남자는 누가 챙겨주냐는 말을 들었다)서로가 감정적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적군도 아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연재해와 싸워 이길 수는 없다. 그것이 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자연재해는 언제고 찾아오는 것이고 몇천년이 지나도 인류는 무력하게 당하기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인명피해만은 막아낼 수 있을만큼 발전했다. 모두가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사회문제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악구름(사회의 병폐가 먹구름같은 기분이 든다)을 못 오게 할 수는 없어도 영향권에서 벗어날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란 "가능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를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꼭 알려주시기를. 좋은 건 나눠야 의미있는 법 아닌가요?)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맑고 밝은 날은 언젠가 온다.
사회가 사람을 만들었다면 사회를 바꾸는 것은 사람이다.
언젠가 평등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자연스러울만큼 평등한 사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행여 이번 생은 글렀다면 다음 생에도 빌면 되지! 좋은 세상이 된다면 아주 조금은 내 지분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