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2.2020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책. 짧기도 하지만 내용이나 문체가 확 사로잡아버리는 무언가 있었다. 그의 독백에 심취했던가.
철학적 교훈과 깊이감 있는 문장들을 얻었다. 니체가 더욱 읽고 싶어졌다. 올해는 꼭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고 싶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몽테뉴의 수상록
나는 악마인가, 아니면 초인인가, 혹은 그 둘 다인가
70년의 인생. 돌아보면 입을 벌린 검은 동굴 앞에 선 기분이다.
옛사람들은 거울 속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지. 그들에 거울에서 보던 악마, 그게 바로 나일 것이다.
내가 살았던 시간은 아무도 맛본 적 없는 밀주였다/나는 그 시간의 이름으로 쉽게 취했다 - 김경주의 비정성시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뼈만 남은 겨울산이 핏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금세 칙칙해진다.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 공포나 분노, 질투 같은 게 강한 감정이다. 공포와 분노 속에서는 잠이 안 온다. 죄책감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나는 웃는다. 인생도 모르는 작자들이 어디서 약을 팔고 있나.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신들의 그 앙상한 틀에 들어가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은 가늠조차 못 할 테니까.
'킬링'을 '힐링'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힐링 좋아하시네.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죽기 전에 바보가 될 테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될 테니까
술만 마시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는 동네 사람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키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친구여," 차라투스투라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것 따위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도 없고 지옥도 없다. 당신의 영혼이 당신의 육신보다 더 빨리 죽을 것이다. 그러니 더이상 두려워하지 마라."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우연히'라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늙어서 좋은 점 하나는 사람들이 여간해서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생 오디오를 수집하던 남자가 회사의 지시로 행사용 앰프를 사러 다니게 되면 아마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젊은이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좋다.
웃는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기를 무방비로 내준다는 뜻이다. 자신을 먹이로 내주겠다는 신호다. 그들은 힘이 없고 저속하고 유치해 보였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은 자긍신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는 것일까
한 남자가 찾아와 만났다. 기자라고 했다. 그는 악을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 진부함이 나를 웃겼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악을 왜 이해하려 하시오?" "알아야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밀했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