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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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아름답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신인류가 아니라,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지구 밖에 '마을'이 존재하는 것은 그녀의 연구가 성공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내가 마을에 살았을 때, 나는 사람들이 나의 얼룩에 관해 무어라고 흉보는 것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없다. 나는 나의 독특한 얼룩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 어떤 결점들은 결점으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마을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 다정한 상상력,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반갑다고 생각했다. - 빈자리마다 질문이 떠오른다. 답이 작품 안에 없다고 해도 질문을 건네준 것으로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에서의 사랑은 왜 불가능한가?, 사랑에 가학적 판타지를 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체성을 지우는 PC주의의 난점을 짚고 있는 것일까?, 편애가 발생할 때 사랑은 가능하게 되는 것인가? 편애의 시작점은 다름의 인식인가? 모든 사랑은 편애인가? 성애와 사랑은 어떤 연관을 가지는 가?) <스펙트럼> "그럼 루이, 네게는." 희진은 루이의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 빛을 보았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 - 작가의 섬세한 상상력과 구체적인 지성이 향하는 곳이 따듯한 자리라서 좋았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는 마음의 힘 뿐만 아니라 지식도 필요함을 느끼게 해준 작품. 단단한 팔 하나를 더 얻은 기분이다. 껴안을 수 있는. <공생가설> "수빈은 순간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지금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느낀 적 없는 무언가가 아주 그리워지는 감정이었다." - 어떤 느낌에 대한 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마치 그 느낌이 원래 내 것인양 느껴지게 된다. <감정의 물성> "항우울제는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거지만, 감정의 물성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엄청 잘 팔린다면서." "부정적 감정 라인은 판매되는 물량에 비해 실 사용량이 적대요.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언제든 손안에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거죠. 이것도 옆 잡지사에서 쓴 리뷰 글에서 본 얘기지만요." "글쎄, 이해하기 힘든데. 그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는 게 정말로 그 감정을 소유하는 건 아니잖아?" (...) "선배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제 생각은 이래요.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직접 걸어두고, 휴대폰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누군가는 아직 폴라로이드를 찾아요. 전자책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종이책이 더 많이 팔리고. (중략) "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 하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언뜻 옳은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무언가 다르지 않은가.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오직 감정 그 자체였던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닌가? 의미가 배제된 감정만을 소비하는 것은 인간을 단순히 물질에 속박된 동물로 전락시키는 일이 아닐까? 애초에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조차도 궁극적으로 보다 고차원적인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 않은가? - 흥미로운 아이디어, 당장 소설 속 이모셔널 솔리드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여러갈래로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작가가 만들어내는 상황이나 기술, 물건들도 좋고 그것들과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서술한 부분도 좋다. 뭉텅뭉텅 질문들을 던져주고 다정한 방식으로 답을 유도하는 것도 좋다. <우리가 빛의 속도갈 수 없다면>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아닌가." - 일종의 경고라고 생각했다.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다정한 방식으로, 발전만이 최우선, 또는 유일한 의사결정 기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