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은이), 김화영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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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은 후 남은 여운은 따뜻함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재앙을 만난 한 도시의 사람들은 폐쇄된 상태에서 도처에서 죽음을 마주하며 희망을 잃어가지만 그 안에서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의지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버텨낸다. 코로나가 정점에 달했을 때 감염자의 동선을 낱낱이 캐고 서로를 비난하는 등의 사회분위기에서 코로나란 병만큼이나 인간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분위기가 아프고 처참했다. 하지만 묵묵히 본분을 다한 의료진과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 대다수의 시민들의 힘으로 코로나에 잘 대항하고 있다. 페스트가 진행되는 과정이 코로나와 너무나 유사하고 관료들의 대처나 언행도 너무 비슷하여 중간중간 소름...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리유, 타루, 랑베르, 코타르, 오통, 그랑, 파뉠르 등. 아픈 부인을 요양보낸 상태에서 시가 폐쇄되어 생이별을 하게 된 상태에서도 이성적이고 성실하고 한결같은 소명의식으로 환자들을 돌본 의사 리유. 그는 슬픔을 표현하는 법이 없이 늘 환자를 돌보는데 그래서 더 그의 슬픔이 느껴진다. 그는 신을 믿지 않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며 사람들을 구하려 노력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동반자가 된 랑베르. 그는 본인이 오랑 시민이 아니므로 페스트는 자신과 관련이 없고 따라서 애인이 있는 원래 살던 도시로 도망치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결국 페스트는 시의 행정적 구분으로 구분되어지는 문제가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리유와 함께한다. 반면 코타르라는 캐릭터도 참 재밌다. 페스트가 만연한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인물. 정확히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경찰에 체포될 불안을 안고 살다가 페스트가 창궐하여 페스트에 걸릴까봐 불안해하는 시민들을 보고 동지애를 느끼고 안도한다. 판사 오통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로 죽어가는 모습의 묘사에서 페스트의 무자비함과 인간의 무력함을 정점으로 보여 준 후 조금씩 페스트는 사그라들어가고 군중들은 조심스럽게 희망을 가지다가 시의 문이 다시 개방되면서 환호한다. 하지만 의사 리유는 언제든 어느곳에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페스트라는 것을 알고있기에 일반 군중처럼 환호하는 대신 여느때와 같이 왕진을 나선다. 페스트가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일까? 가족을 잃은 자들에게는 슬픔의 경험과 추억을, 무사히 이겨낸 사람들에겐 페스트를 겪었다는 경험과 안도의 추억을...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은 경험과 추억뿐. 손에 무엇하나 쥐어지는 것은 없다. 절대적인 것도 없고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삶에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저 묵묵히 가까운 사람을 잃었음에도 슬픔 한 가운데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뿐일까? 리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