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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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짜오, 씬짜오,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주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p.89,오늘같은 글을 읽을 때면 나는 영화 '동주'의 대사를 떠올린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각 나라의 역사 교육은 때로 유리한 쪽으로 흘러간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일제강점기의 내용을 전부 꿰고 있을 정도로 역사에 뜨인 눈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교과서에서는 토씨 하나 빠지지 않게 꼼꼼히 적혀있는 치욕의 날을 나는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친 구석 페이지의 한 줄이 있다. 영영 외면하게 두는 사건이 있다. 월남전이라고도 불리는 베트남 전쟁.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가 되었다. 동시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전쟁통이었다는 걸 알지만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저버린 순간이 부끄럽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국민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인간은 권위를 등에 없으면 짐승만도 못하게 되는 걸까. 주인공의 부모는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알고 난 후 그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아버지는 부끄러움을 모르나 어머니는 부끄러움을 넘어 본인을 자책한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들과 더는 얼굴을 마주할 수 없겠지. 부끄러움 앞에 선 이들은 서툴기만 하다. 응웬 아줌마도, 주인공 어머니도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지만 결국 "씬짜오." 인사말 한마디 하기도 어려운 사이가 되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95년도였기에 몰랐다 한들 그들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글을 읽고 나니 주인공 어머니가 많이 아른거린다. 좋아하는 친구 앞에서 결점 없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과거의 사건이 그녀에게 결점이 되어 마음이 아프다.) 한순간에 돌아선 관계를 어찌하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본인을 탓하는 행위 뿐인 어머니.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섬세한 사람. 다른 이들이 복잡하다 말할 때 섬세하다 말하며 안아준 친구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겠지. 외로움이 많았다고 서술되는 인물이라 마음이 무겁다. 2020년이 된 지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당신은 정말 따뜻한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