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말자는 지민이 서러움을 모르는 아이로 살길 바랐다. 흘릴 필요가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삶에 의해 시시때때로 침해당하고 괴롭힘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지민은 삶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기꺼이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이야기는 조부모 말자, 부모 영숙, 조손 지민에게로 세대가 움직이며 보낸 시절의 아픔을 조명한다. 분명 좋은 세상이라는데 꿋꿋한 여성들에겐 늘 가혹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남의 일이 아니라 가장 객관적인 사실이다.
말자는 오빠가 학교를 다닐 때에도 '기집애'는 배워도 쓸모가 없다는 사상 아래 한글 한 자 떼지 못한 채로 살아갔다. 영숙은 가난한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 떠난 말자를 도우려 일찍이 스스로를 한 명의 노동력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지민. 코흘리개일 적 할머니를 붙잡고 같이 한글 공부를 하여 할머니의 눈을 뜨이게 하준 지민이. 모자랄 것 없는 능력을 갖추고도 '기간제'라는 벽 앞에서 무너져야만 했던 지민이.
말자는 챙겨주지 못한 영숙의 유년시절을 기억했기에 지민만큼은 철부지로 자라 부족함을 몰랐으면 했다. 좋은 세상이니까. 여자고, 남자고 이제는 누구보다 동등하게 평가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자의 말이 옳다. 지민은 꿋꿋하게 헤쳐나가 자신의 분야에서 영역을 넓히는 멋진 인재였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토록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가.
우리 이제 더는 죽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 나의 싸움이 미래의 지민이들에게 기회로 작용한다면 나는 주저않고 칼을 뽑아들 준비가 되어있다. 백 년 전에는 마녀로 태어났을 우리가 아직 눈을 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