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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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_outline책 정보
책이 출간되었을때부터 읽고 싶기는 했지만, 얼마전 KBS에 김영하 작가가 출연한 걸 시청하고 나서는 어서 빨리 읽어야겠다 싶었다. 일본에 오기 전 극심하게 바빴기에, 우선 인터넷에서 책을 구매해둔 다음 일본 오는 비행기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리라 했다. 그런데 웬걸, 오기 전 너무 바빴던 탓에, 그리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러 가야했던 탓에 비행기 안에서 내리 잠만 잤다. 그래서 책은 여기 도착하여 인터넷이 안될때 밤에 읽게 되었다. 책에는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들도 등장하지만, 그 경험 속에서 느꼈던 바와 생각했던 바에 대한 내용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글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그. 실제로 본인이 쓴 작품 중에 2개정도만 여행지에서 썼고 나머지는 한국땅에서 썼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 생각에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을 거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아닌가보다. 결국 글은 엉덩이로 쓰는거라는 뉘앙스의 말도 언젠가 방송에 나와서 했던 것 같다. 물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여행지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분명 글감이 될 것은 분명하다. ​ 옛날에 '더 클래식'이라는 그룹과 거기서 활동하는 김광진 아저씨를 엄청 좋아했었다. 기자인 친구가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와서 "지금 김광진씨와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데 당장 뛰어와라"고 해줘서 달려가 만나뵈었던 적이 있다. 궁금한거 물어보라고 해서 물어봤던 것이 "작곡할 때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같은 멋있어 보이는 질문이었다. 그 때내가 들은 답변은 "그냥 책상에 앉아서 써야지 하고 써요"였다. 그 당시에는 이게 내 환상을 깨는 말이었다. 길 가다가 갑자기 전봇대를 보고 '아!'하는거 아니었어? 그럴때 영감이 팍 와가지고 악상이 떠오르고 그런거 아니었어? 하지만 오히려 나이가 든 지금은 알겠다. 그게 무슨 말인지. 가끔 학생들이 나한테 똑같은 질문을 한다. "연구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어요?" 글쎼, 그게 말이다.. 그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번개치듯 오는게 아니라 그냥 계속 읽고 쓰다 보면 그것이 발전되어 연구 아이디어가 되는거지. 책 여기저기에 재미난 생각도 많고 했지만, 표딱지를 붙여놓을만큼 '이건 저장해둬야지'하는 부분은 이거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철학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사상은 옥수수 같은 곡물과 달리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것. 인맥이나 터전에 얽매인 직업, 대표적으로 정치인이나 농민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발상은 무게가 없다. 지혜도 그렇다. 기술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런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먹고 살기에도 유리했다. 마찬가지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도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찾아 천하를 유랑했다. 솔닛은 음악가(호메로스 같은 서사시인도 그 범주로 봐야할 것이다)와 의사도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유랑생활을 했다고 말한다.” 김영하 (2019). 여행의 이유, pp. 76-77. 내가 이 부분이 확 꽂힌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이런 삶을 꿈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굳이 이야기하면 지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옛날 같으면야 책을 이고지고 다니기도 어렵고, 정보접근에 제한이 많고 하기 때문에 공부하기에 더 유리한 지역과 아닌 지역의 격차가 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연결만 되면 정보가 널려있고, 읽고 쓰는 일은 정말 어디에서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한 때 꿈꿨던 삶은, 한 곳에서 2-3년 살다가 다른 곳에 가서 또 2-3년 살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런 꿈을 꾼다. 하지만 체력적 한계와 현실적 문제(돈) 등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난 운이 좋아서 이렇게 일본에도 2개월 살아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외국어로 영어,독일어, 일본어를 공부했는데 영어권 나라에도 살아보고 독일에도 3개월 살아보고, 일본도 2개월 살아보게 되었으니 정말 공부한거 본전은 뽑은 것 같다. 만약, 내 삶에 또다른 행운이 주어져 다른 곳에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1) 이탈리아 시골 마을, (2) 북유럽국가(핀란드,스웨덴, 노르웨이 중 하나) (3) 호주 멜버른, 이렇게 세 곳에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