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양억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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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그리고 상실의 시대 원제목인 ‘상실의 시대’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의 청각적 효과도 놓칠 수 없었다면 뭐 그 나름대로 이해는 가지만 말이다.) 세상에 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표현들과 부드러운 연결성이 미친듯이 빨아들였다. 읽는 내내 소설의 함의에 대해 생각을 돌릴 틈은 없었다. 그 날의 분위기, 애정어린 대화와 교감, 계절의 흐름. 작가가 글로 그린 모든 장면에 완전히 몰입했다. 그렇지만 섹스의 어처구니 없는 등장은 당혹스럽고 불쾌했다. 잊을만하면 맥락과 안맞게 자꾸 튀어나왔고,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산뜻한 제목과 달라서 배신감도 드는 것 같았다. 책을 덮고 전체를 다시 그렸을 때에야 알았다,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그것이었음을. 죽음과 엎치락 뒤치락하는 위태로운 삶 속에서 관계는 허상이다. 잡으려 해도 잡아지지 않는 것이다. 몸을 섞으며 상대를 다 가지는 것 같지만 결국 남는 것은 허탈함의 심연 뿐이다. 이 책의 섹스 씬에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느끼기는 힘들다. 어떤가 하면 부자연스럽고 불안정하다. 사랑이 아니라, 도저히 삶을 지탱하기 힘들 때 안정되기 위해 찾는 진정제 같은 것이었다. 관계란 사정한 뒤처럼 공허하다. 나오코는 섹스를 할 수 없었어도 자신에게 찾아오는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어떻게든 시도했다. “언제까지고 나를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줘.”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본능을 통제하는 상실의 시대 —일본 고도성장기의 과도적 면모 나오코와 나가사와 선배는 각각 본능과 이성, 그 양극단에 있는 캐릭터다. 나가사와는 철저하게 본능을 조정하고 통제할 줄 알며, 능력 위주의 사회에 이르러 철저히 이성적인 성격이 이득을 보게 된 자이다. 전 애인의 작고 소식을 듣는 순간에는 완벽하지 못했을지라도. 나오코는 현실세계의 규칙에 곧잘 견디지 못했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응하지 않은 데 계속해서 자괴감을 느낀다. 기즈키가 죽은 후 그 증상은 심해져 언어체계에도 혼란이 왔으며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요양원으로 간다. 와타나베는 그 중간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 기즈키라는 거시적인 환경 변화에 잇따라 주변에서 전해지는 혼란. 그리고 절대 스스로를 동정하는 짓은 하지 말라는 나가사와에 옮아가는 모습. “너, 지금 어디야?”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러나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