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라 불리는 작품 중에 쉬이 읽히는 책이 얼마나 될까. 데미안은 책장을 처음 편 순간부터 중반부까지는 영화 한 편을 보는 듯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전이었다. 싱클레어가 겪는 유년기 파트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청소년기의 고민이 담겨있으면서도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가 궁금해져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싱클레어가 김나지움에 들어간 무렵, 나도 헤르만 헤세의 중등철학 교실에 들어간 것 마냥 저자의 진지한 존재론적 고뇌가 담겨있어 진도가 좀처럼 나질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헤세가 빼어난 글솜씨로 담아낸 인류사 전체를 관통하는 존재론적 고찰의 결론이 궁금해서였다.
싱클레어, 데미안, 혹은 에바부인을 통해 보여준 저자의 사견에 대해서 독자의 수만큼 다양하게 해석하여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의아하게 다가온 결말이었으나, 저자만큼 치열하게 자아에 대해 숙고한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