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사양
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오유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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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고 있던 유명한 작가의 대표 작.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책도 아니고 좋아하는 영화에서였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마츠코가 집을 나와 처음 만난 남자. 다자이 오사무의 환생이라 믿던 그. 그게 나의 첫 다자이였다. 그런 어느 날 서울 도서관에서 떠버린 시간을 보내던 중에 무심코 집어 들어 단숨에 매료되어 집 근처 도서관에 회원 등록을 하고 대출했다. 사실 나는 인간실격 한 작품만 있던 책을 서울 도서관에서 잠시 읽고 같은 책으로 대출하고 싶었으나 내가 간 도서관에는 두 편의 작품이 있는 책뿐이라 에이 하고 빌렸는데 웬걸. 아무튼 각설하고 인간실격부터.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삶, 회고록 그 자체였다. 작품 여기저기에 만연한 패배주의. 일본의 패배주의와 허무주의가 이런 거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우스꽝스러우려 노력하는 화자의 모습이 사회성이 떨어져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춘 채 바들바들 떠는 개를 연상시켰다. 그는 원숭이라 표현했지만. 우울하고 음울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볍고 즐거운 문체였다. 생전의 다자이는 역시 글에서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이려 노력했던 사람이었겠지. 아니면 사실 그저 유쾌한 사람이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만난 사양. 처음 사양이란 제목을 봤을 때 한참을 고민했다. 도대체 무슨 사양인가. 거절할 때의 그 사양인가. 보기 좋게 틀렸고 지는 해의 사양이었다. 무너진 귀족 가문의 장녀의 이야기. 이전 작품보다 더 가벼운 문체와 화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꾸며진 문장들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여기서도 군데군데 다자이의 삶을 녹인 남성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잘 꾸며진 패배주의가 느껴지는 작품.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 혹은 어머니의 부재를 채우고 싶었던 것인지 마지막 귀족이라는 엄청난 호칭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까지 고귀하게 포장해 놓은 어머니. 반면 자식들은 다들 망가져있다. 망가진 채로 세상을 두려워하며 (역시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동생과 망가진 채로 동생의 스승의 아이를 가지고 낳겠다고 결심하는 장녀. 나의 관념에서는 그런 사람의 아이를 갖고 낳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이건 어쩐지 그 일본이라는 나라의 색인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사양이 더 읽기도 쉽고 재밌는 요소도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두 작품이 나란히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사양에서 만난 좋아하게 된 부분을 끝으로 마무리.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신변에 나의 냄새는 눈곱만큼도 묻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것이 날 부끄럽게 만든다기 보다, 이 세상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별개의 생명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나 혼자 멀찍이 동떨어져, 불러봐도, 소리쳐봐도, 아무 메아리도 없는, 황혼의 가을 들녘에 초라하게 두 발로 서 있는 듯한,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처절한 고독에 휩싸인다. 이것이 그 ‘실연’이란 것일까. 들녘에 이렇게 홀로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동안, 해가 완전히 져서 마침내는 밤이슬에 얼어 죽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생각하면, 메마른 통곡으로 어깨와 가슴이 부서질 듯 요동치고 숨조차 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