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요조가 말하고 좇는 큰 그림이 쓰레기 같다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좇는 커다란 것들은 사회에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지나치게 순수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큰 것과 작가가 작은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들 사이의 절벽입니다. 48년에 발표된 소설이라 어느정도 쓰루는 해도 독자에게 최소한의 동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하는 장치들은 있으나마나한 고철들에 불과합니다. 가장 싫은 것은 작가가 요조를 허무에 빠졌지만 순수함을 원하는 인물로 그려나가지만 그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요조를 포장한다는 것입니다. 소설이 작가와 이 정도의 유사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 얘기는 조금 달라졌겠지만 이정도의 소설에서는 마치 작가가 요조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자신을 포장하려고 아둥바둥하는 행위로밖에 읽히지를 않아서 유감이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기분이 더럽기만 한 소설입니다. 단순히 인물이 쓰레기라 더럽다는 말이 아닙니다. 뭔가 요조가 쓰레기라 싫어!라는 말을 작가는 어쩌면 더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덧붙이게 됩니다만 인물의 도덕성과는 상관없이 그를 쓰레기처럼 보이게 만드려고하지만 반어적으로 자꾸 되도않는 요소들을 가지고 인물을 더 얄팍하게 만들며 그것을 작가 자신의 포장지로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더럽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