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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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 징후들이 가지고 온 사명의 기호가 해독되는 것은 이미 사건이 종료되고 나서이거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때라는 것이 삶의 비극이었다. 28. 할머니는 나를 사랑했고 아버지도 나를 사랑했으며 어머니도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28. 머리만으로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 아아 지금 그런 무모하고 충만한 자신감을 생각하면 사실 약간 오싹하기도 하고 설핏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무모함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히말라야 에 오르고, 누가 바다 깊숙한 곳을 탐험하러 떠나며, 누가 빙하의 극지에 과학 기지를 세우고, 누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말로 한 여자를 제 생 안으로 데려온단 말인가. 36.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역설하면서 가난한 자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교회, 낙태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왜 젊은 엄 마들이 배 속에 든 자신의 아이를 죽일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조금도 알고 싶 어 하지 않는 교회,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강대국의 무기 판매에 아무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 이혼은 죄라고 하면서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불행하게 사는지 보이는데도 모른 척하는 교회! 동성애가 무슨 취 향인 줄 아는 교회!..." 44. 그녀의 웃음소리를 나도 모르게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던 것 같다. 44. "왜 사랑하나요?"라는 문장은 문법적으로는 옳다. "어떻게 그를 사랑 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도 문법적으로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말들 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 사랑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댈 수 있다면 이미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