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을 지향한 짧은 시간들 안에 겪은 것들, 느낀 것들을 풀어보려 한다. “식사”는 사회 생활하면서 단순한 배 채움의 의미는 아니다. 한 번 만나자는 뜻으로 밥 한 번 먹자라고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 “식사”에서 까다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편한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도 논쟁하는 것, 비난받는 것, 남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알게된 자로서 침묵하고, 몰래 숨어서 나 혼자 불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소, 돼지, 닭, 양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했다. 나라도 말해야 하고 나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불편한 사람이 되기를 자처해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놓고 비난하거나 면박주지 않는다. 맞아 그런 문제도 있었지. 우리 그러면 채식 메뉴가 가능한 곳으로 찾아보자. 라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고맙다. 한 번의 만남이라도 더 채식 식당을 구매하고, 육식 식당을 불매함으로써 자그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의 사체가 없는 식사도 정말 맛있다는 것을 경험시켜줄 수 있으니까. 이런 친구들 중에는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궁금해 하고, 더 알아가려고 하고 심지어는 자신 또한 비건을 지향하겠다며 다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럴 때 정말 눈물나게 기쁘다. 내가 이 삶의 방식을 실천하다보면 누군가는 나의 손을 잡고 함께 해주는 구나. 그렇게 한 사람이 두 사람, 두 사람이 네 사람이 될 날을 고대하며 무척 뿌듯해진다.
문제는 너의 채식은 존중하지만, 그건 너만의 일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비건 67쪽] “나도 쿨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요 당신은 열심히 육식하세요, 전 채식할게요. 서로 스타일이 다른 것뿐이니 각자의 선택을 존중합시다”라고. 그런데 문제는 그보다 복잡하다.” 육식의 생활방식이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함은 물론,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운다고 할지라도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가능하다 치더라도) 15년을 살 수 있는 닭을 내 입 즐겁자고 40년 만에 죽이는 문제. 내 손으로 죽이는 것만이 살생이 아니다. 내가 육식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그 순간, 나는 청부 살생을 저지르는 것이다. 동물 권리에 대한 문제만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가난한 나라의 밀림과 논과 밭이 수십억 마리의 가축 사료 재배에 이용된다. 그 나라의 국민들은 식량을 빼앗기고 굶주림에 시달린다. 식량에 대한 가축과 빈민의 대결 구도가 이루어지는 것. 이런 인권 문제를 또 넘어서 환경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면, 온갖 운송수단이 배출하는 오염 물질의 총량보다 더 많은 메탄가스가 공장식 축산을 통해 배출된다. 여름엔 덥다고 겨울엔 춥다고 불평하는 것, 우리가 하루 세끼 구매하는 육식 탓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념을 가진다는 것은 굉장히 신중해야할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신이 아득해졌고, 심장이 빨리 뛰었으며 먹고 있던 식사가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식탁에 오르는 동물은 음식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신념, 고기를 먹어줘야 건강하고 힘이 난다는 신념, 인간은 육식 혹은 잡식 동물이라는 신념, 채식은 비싸다는 신념. 내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채식에 대한 비난들은 거대한 자본을 가진 축산 업계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미 저명한 연구 결과들이 어떠한 인간 신체에도 (임산부나 어린이, 운동선수 등) 채식으로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직접 실천을 해보니 2만원짜리 치킨을 시키느니 그 돈으로 장을 보면 몇날 며칠 채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건은 알면 알수록 논리적으로도 완벽한 삶의 방식이다.
무엇보다 비건은 금욕주의자라는 오해에 시달린다. 나는 혀의 쾌락을 포기한 적이 없다. 식물성 재료들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양념을 만들 수가 있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한식 양념은 고기 없이도 그 맛이 난다. 채식을 통해 더욱 맛에 민감해지고 매 식사를 즐겁게 하게 되었다. 또한 육식을 하던 때에는 자주 체하고 탈이 났지만, 채식을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배탈이 난 적이 없다. 심지어 반 아이들이 달고 오는 질병들을 나도 함께 겪는 게 일상이었다면 채식을 실천한 이후로는 반에 온갖 전염성 질병들이 판을 쳐도 내 몸만은 말짱했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았던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의 말을 덧붙이고 싶다. “공장식 축산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이다.” 당신이 먹는 것과 당신이 쓰는 돈이 동물들을 향한 홀로코스트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